영매탐정 조즈카
오랫만에 읽는 본격추리소설. '영매'로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조즈카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은 특수설정 미스터리물이다. 즉은 사람에게서 답을 들으면 추리가 무슨 의미가 있냐 할 수 있는데, 경찰에게 죽은 사람에게서 들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진상을 간파하는 조즈카와 그것을 현실에 맞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고게쓰라는 또 다른 주인공이 콤비를 이뤄 사건을 해결한다는 구조가 참신하고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
본격하면 역시 수수께끼 풀이가 핵심이다.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살해를 했으며 그걸 숨기기 위해 어떤 장치를 했고, 그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를 밝히는 것. 여기서 독자가 그걸 추리할 수 있도록 공정한 단서를 제공했느냐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트릭이 흥미롭기만 하면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 타입. 총 4가지의 사건이 등장하는데 코난마냥 정교한 실이나 로프를 쓰는 비현실적인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해서 추리물로서의 재미는 무난한 편이다. 마지막 반전이 등장하기 전까진.
본격에서 수수께끼 풀이만큼 중요한 것이 탐정의 매력이다. 이 부분에서는 좀 감점요소가 있는데 일단 조즈카가 영매라는 것은 제외하고도 좀 비현실적인 요소가 많다. 단적으로 말하면 라노벨 여주 그 자체다. 서구권의 피를 이어받은 비취색 눈동자, 아름다운 미모,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덜렁이 소녀 속성.. 그리고 그에 끌리는 고게쓰. 좀 너무 전형적이라 낡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이후 스포일러)
3편의 사건이 끝나고 마지막 사건에서 지금까지의 전개를 뒤집는 반전이 나타나는데, 캐릭터가 싹 바뀌는 묘사가 끝내준다. 임팩트만 따지면 '살육에 이르는 병' 급이라고 봄. (굳이 비교하자면 '살육에 이르는 병'이 더 쎄긴 하지만) 조즈카가 영매라는 건 쌩구라고 실제로는 진짜로 추리한 것이었다(...). 특수설정 미스터리가 아니라 그냥 미스터리 소설이었음. 하지만 마지막 사건에서 밝혀지는 그 추리능력은 영매 뺨치는 특수능력급이긴 하다. 조즈카는 어렸을 적 외국에서 자라면서 마술을 배운 적이 있고 실제로 마술사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인간의 각종 심리와 손재주를 익혀 탐정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조즈카의 추리는 인간에 대한 관찰을 통해 각종 정황증거를 수집해서 범인을 특정하고 이후 증거를 찾아나가는 방식이다. 아무리 명탐정이어도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추리가 확확 뻗어나가는 감이 있긴 한데, 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이며 앞서 언급했듯 '추리 게임으로서의 공정함'에도 나름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인다. 나는 맞춘 적 없지만.. 그리고 페이크 주인공 고게쓰와 조즈카가 다른 방식으로 진상을 짜맞출 수 있었다는 이중 추리 구조도 소설의 킥 중 하나.
이 소설의 매력은 결국 반전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터져나오는데, 앞서 언급한 멍청해 보이는 조즈카의 모습이 다 연기라는 것이 밝혀지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어쩐지 평가가 좋은 소설인데 캐릭터가 구닥다리스럽다 싶었다. 그래서 후속작을 만들 순 없겠다 싶었는데 나왔더라. 아무래도 같은 반전을 또 써먹을 순 없으니 가져온 전개방식이 도서추리-즉 범인은 초반부터 밝혀지고 범인의 공작을 어떤 식으로 깨트려 나가는가에 중점을 맞춘 방식이다. 후속작에도 나름의 반전은 있는데 뭐 크게 임팩트있진 않았다. 1편만큼 재밌진 않았지만 그래도 적당히 볼만하다.
참 다루기 힘든 캐릭터를 잘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3편도 빨리 번역됐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