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라이더 시리즈
대학생 때부터 가면 라이더를 보기 시작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플레이했던 '소드걸즈'라는 게임에서 가면라이더 패러디가 종종 나와서 그 원전을 알고 싶어서였고, 오타쿠로서 특촬물 하나 정도는 봐야 하지 않겠냐 하는 쓸데없는 자격지심도 있었다. 3대 특촬물 시리즈-전대물, 가면라이더, 울트라맨-중에서 라이더를 골랐던 건 앞서 말한 소드걸즈의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오토바이'라는 탑승물의 간지에 매력을 느껴서였다. 헤이세이 라이더 (일본의 시대 구분인 헤이세이에 방영되었던 가면라이더 작품들) 이후 작품 중 대부분에서 오토바이는 그저 오프닝에서나 잠깐 얼굴을 비추고 작중에는 비중이 거의 없다는 걸 안 건 나중의 일이다.
너무 옛날 작품인 쇼와 라이더는 배재하고 헤이세이 라이더 이후만 따져도 쿠우가부터 22년 시점의 기츠 까지 총 24작품, 시리즈 당 평균 45화로 따져도 1,080화이다. 한번에 몰아보는 건 너무 지치니, 나는 1년에 2번, 여름과 겨울에 시리즈 하나씩 보기로 했다.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치면 약 13년에 걸쳐 현재 21년 시점의 세이버까지 따라잡았다. 슬슬 결산을 하고 싶어져서 각 부분당 3작품씩 꼽아보았다.
1. 재미있었던 작품
3) 가이무
각본가 우로부치 겐의 명성(?)으로 라이더 팬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작품. 가면라이더 세계관은 암울한 게 많은데 이 작품 또한 그러하다. 세계의 비밀이 밝혀지는 부분부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SF, 신화 등 다양한 부분에서 따온 모티브를 조합하여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구성의 완성도 면에서는 가면라이더 작품 중 최고지 싶다.
2) 에그제이드
일단 아이디어가 좋다. 게임+의료의 조합이라는 신박한 발상. 캐릭터 디자인도 첨엔 저게 뭐냐 싶은데 보다 보면 정이 가는 톡톡 튀는 디자인.. ( 포제는 결국 끝까지 정 붙이는 데 실패 ) 주요 등장인물들 각각의 가치관을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드라마도 잘 짜여있다. 단 쿠로토라는 악역의 개그성과 악성의 조합도 유니크한 매력.
1) 더블
만약 특촬물에 관심 없는 사람에게 가면라이더 시리즈를 추천한다면 더블을 추천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너 아직도 이런 거 보니?'라고 까이것지; 어쨌든 그만큼 무난한 재미와 전개를 가지고 있는 작품. 탐정물 베이스 답게 2화에 걸쳐 한 사건을 풀어내는 옴니버스 전개로 안정감을 갖고 있고 더블이라는 제목 답게 투탑 주인공을 내세워 캐릭터를 대비시켜서 매력을 살렸다. 무엇보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히어로' 이라는 주제를 살려 멋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 히어로라는 주제를 벗어난 라이더 시리즈는 굳이 꼽지 않아도 많고, 최근에 보고 있는 세이버는 세계를 지킨다는 사명을 너무 강조해서 이야기가 빡빡한 느낌을 준다. )
2. 수트 디자인
특촬물이지만 아무래도 SF적인 전투복을 현실에 구현하려다 보면 좀 이상해질 수 밖에 없긴 하나보다. 사실 잘 빠진 수트보다 이상한 수트가 훨씬 많긴한데(...) 특히 디케이드 최종폼은 정말.. 누가 그런 걸 생각했을까 싶음.
3) 히비키
애초에 가면라이더 시리즈 기획이 아니어서 그럴까? 라이더 특유의 눈이 없고 전체적으로 검은색에 날렵한 맛이 있다.
2) 위자드
마법 테마라 상당히 깔끔하고 최종폼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반짝반짝하다.
1) 세이버
최근작이라 그럴까? 꽤나 화려하고 변신 폼이 테마랑 잘 어울린다.
3. 오프닝 노래
아무래도 작품에서 가장 대표적인 음악은 오프닝일 터. 대체적으로 신나는 구성의 노래가 많아 전체적으로 만족하는 편이다.
3) 디케이드 - Journey through the Decade
각트가 작업했다는 걸 알아서 지명도 보정이 좀 있긴한데 ( <-정작 각트 노래 아는 거 몇개 없음 ) 내가 좋아하는 락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 장중함이 10주년 기념작에 걸맞다. 특히 'On the road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세계가 멸망하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 부분이 특촬 히어로 스럽고 좋음.
2) 더블 - W-B-X ~W Boiled Extreme~
하프보일드(ㅎㅎ) 테마를 잘살린 스윙풍 브라스 음색, 펑키한 리듬이 좋다.
1) 오즈 - Anything Goes!
좀 너무 발랄한 느낌이 없진않지만, 그만큼 신나고 에너지가 넘치는 곡. 특히 후렴구의 달리는 느낌의 리프가 최고.
4. 재미없는 각본
3) 디케이드
걍 애초에 만들때부터 설정이나 스토리 엔딩을 제대로 안잡았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지.. 카도야 츠카사라는 잘 빠진 bad ass 주인공이 아까운 마무리가 아쉬운 작품. 세계의 파괴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부여했는데 결국 정확히 뭘 파괴하겠다는지 연출을 못했다. 솔까 나루타키 정체와 목적만 제대로 설명했어도 이정도 평가는 아니었을듯. 악역의 목적을 모르는데 어떻게 우리편에 감정이입을 하냐고.
2) 히비키
마찬가지로 잘 나가다가 엔딩이 다 망친 작품. 아직도 마지막화 보면서 느낀 황당함이 가시지 않는다. 흑막이랍시고 있는 것들은 뭔 생각인지 알 수가 없고, 다 끝났는데 새로운 최종보스가 등장하질 않나.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이번 작품의 적들인 마화망은 일본 요괴를 모티브로 만든 말하자면 자연재해 같은 것들인데 이걸 굳이 뭔가 스토리적으로 의도가 있는 인격적인 적을 만들려다 보니 나온 무리수가 아닌가 싶다. 이와 별개로 전투 주인공(히비키)과 성장하는 주인공(아스무)을 나누어 별개로 조망하려는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비중을 제대로 조정 못했기도 하고 이야기가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는 감이 없잖아 있다. 아스무의 라이벌이랍시고 나온 키리야 코스케는 나중에 꼽을 '라이더 최악 캐릭터' 중 하나(...).
1) 고스트
앞 두 작품은 그래도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었는데 고스트는 전개부터 난관이다. 사건이 전개되다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고 세계관도 제대로 풀지 않으며 이야기가 뜬금없이 전환된다. 참고 볼래다가 도통 납득이 안되서 22개의 가면라이더 시리즈 중 유일하게 중도하차한 작품.
5. Good 캐릭터
어디 인터넷에서 본 거 같은데, 가면라이더의 주인공들은 크게 2분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도덕적인 마음가짐을 가지고 모두를 구하기 위해 힘쓰는 전형적인 주인공타입인 모랄형, 둘째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괴짜 타입의 에고형. 대표적인 모랄형이 쿠우가, 가이무라면 후자가 카부토, 파이즈일듯. 물론 당연하게도 모든 캐릭터를 딱 갈라서 성향을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며 두 성향을 모두 가지거나 이렇게 나눌 수 없는 캐릭터도 있다.
3) 쿠우가 - 고다이 유스케
헤이세이 초대 라이더. 솔직히 상징성 땜에 꼽은 게 절반 이상이긴 하다. 그래도 정말 마음가짐과 멘탈 하나만은 역대급 캐릭터. 2000년 작품인 만큼 고리타분함과 정신력 강조 캐릭터 조형이 아직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1000개의 기술을 가진 남자라거나 모험가를 자칭한다거나 지금 와서 보면 참 깨는 설정이 붙어있지만, 옛날 라이더 답게 변신의 페널티(=생물병기화)가 강조되는 상황에서도 의지력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히어로상의 매력이 있다.
2) 드라이브 - 토마리 신노스케
더블과 각본가가 같아서인지, 드라이브도 기본에 충실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바꿔말하면 무난하다는 건데, 신노스케도 사실 캐릭터 자체는 적당히 정의감 있고 수사물을 바탕으로 한 주인공인만큼 추리력이 뛰어난 무난한 주인공 캐릭터다. 드라마 시작부터 어느정도 완성되어 있어 딱히 성장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 뭐 꼭 주인공이 성장해야만 극이 재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사실 약간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 보이는 주인공이 많은 라이더 시리즈인만큼(...) 정상적인 일반인인 신노스케가 오히려 특색이 있다고 해야할지. ( 뭐 얘도 농떙이 치는 거 좋아하는 괴짜 기질이 없진 않음 ) 뭣보다 22명의 주인공 중 3쌍(미디어믹스에 따라 상이) 정도 밖에 없는 유부남이 된다는 것이 굉장한 점(?). 그리고 드라이브는 신노스케 하나만 본다기 보단 '특수상황하 사건 수사과' 팀 간의 캐미가 좋다. 다들 독특한 개성이 있고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음.
1) 에그제이드 - 호죠 에무
에무는 앞서 언급한 모랄형에다가 이중인격 컨셉을 곁들어 에고형을 살짝 섞은 캐릭터다. '컨셉'정도만 잡은거고 이중인격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지만. 모랄형이라고 마냥 착해빠진 게 아니라 때론 과감한 면도 있고 지략가적인 면모도 있고, 어리숙한 인턴에서 출발해서 성장하는 면도 보여주는 등 여러모로 완전체 캐릭터.
6. bad 캐릭터
3) 빌드 - 에볼토
캐릭터 자체는 확실한 악역 역할에 충실하지만 문제는 너무 충실하고 강했다. 빌드에 등장하는 악역은 축약하면 에볼토랑 난바 중공업 회장 2명밖에 없을 정도로 비중이 너무 큼. 빌드 후반부는 역대 작품 중 손꼽을 정도로 처절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그게 다 에볼토 하나 때문이니 보면서 좀 피곤함을 느꼈다.
2) 제로원 - 아마츠 가이
22작품의 22종류의 악역이 있지만, '얘는 정말 못써먹겠구나..' 싶은 캐릭터다. 아예 종족이 다르거나 악의로 똘똘 뭉친 것도 아니고, 그냥 가치관이 다르고 그걸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해악을 끼치다니. 하는 말도 앞뒤가 안맞고 찌질한 면도 많고.. 걍 악역이었어도 구렸는데 결국엔 아군화 된다는 점이 더 구리다.
1) 히비키 - 키리야 쿄스케
얘는 걍 비호감. 등장부터 싸가지 없이 나와가지고 끝까지 싸가지가 없다. 마지막화에서 뭐 아스무를 인정하니 마니 하는데 니가 뭔데.. 싶은 생각만 들고 달라진 점을 쥐톨만큼 보여주긴 한데 꼴랑 그거 갖고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건 좀.. 사실 굳이 나왔어야 하는 캐릭터인가 싶을 정도. 아스무가 히비키의 제자가 되지 않는 길을 선택할 것이라서 누구 하나는 제자로 꽂아줘야 해서 투입한 캐릭터 같긴 한데 이렇게 비호감으로 만들었어야 했나 싶다. 히비키랑 캐미도 뭐 없고.. 크로스오버물인 지오에 가서는 좀 나은 모습을 보여주긴 한데. 배우분은 나중에 덴오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서도 살짝 재수가 없지만 그래도 본인의 목적에 충실하고 츤데레의 비중도 잘 조절한데다(키리야는 걍 츤을 넘어서는 싸가지라..) 눈물나는 설정도 있어서 사정이 훨 낫다.
7. 변신 포즈
역시 가면라이더의 상징이라면 변신.
3) 세이버
검을 뽑아서 변신한다는 설정 자체가 일단 멋있음.
2) 에그제이드
가샤트를 제끼는 동작이 호쾌하고 무엇보다 성우가 잼프의 카게야마 님..
1) 쿠우가
근본. 이후로는 팔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이 포즈를 안쓰는데 좀 과하긴 하지만 그게 원조의 맛이다 이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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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정리를 해봤는데, 사실 좀 더 꼽으라면 꼽을 수 있을 거 같지만 이쯤에서 마무리. 긴 세월이었다.. 사실 가끔은 내가 왜 그렇게 썩 재미있지도 않은 드라마를 보고 있나 싶을때도 있었지만, 히어로물의 매력은 신화시대때부터 입증되어 온 것이 아니던가. 미국식 히어로와 가면라이더를 비교하는 것도 재밌는 분석이 되겠지만 아무래도 자본력의 차이부터 해서 체급차가 나다보니..
대부분 TV 방영분만 보고 극장판이나 ova는 챙겨보지 않았는데, 뭐 앞으론 여유가 되거나 관심 있는 라이더가 나오면 극장판도 챙겨보지 싶다. 가끔 일본 창작물 보면 주말 아침에 특촬물 챙겨보는 오타쿠들이 나오는데 (가령 이야기 시리즈의 아라라기) 그 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여름 1달에 그해 완결난 작품 몰아보는 수준으로 보게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