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온 올해의 여름휴가. 전례와 같이 전시 관람 및 호캉스를 계획했다. 뭐 볼까 찾아보다가 올해는 딱히 볼 게 없어서 22년인가 특별전시회만 봤었던 국립중앙박물관을 제대로 보기로 했음.
이게 내가 체력이 많이 떨어졌나 싶은게.. 그냥 1층만 돌아봤는데 진이 빠졌다; 물론 1층이 상당히 넓긴 했는데. 고대사 부분은 공사 중이라 보지도 못했는데도 조선 즈음 가니까 걍 갈까 싶었다. 물론 유물이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좀 김이 빠졌던 것도 없잖아 있는데.. 그래도 중앙의 거대한 탑이나 출토된 고리형 검, 반가사유상 등은 나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내 관심사는 세계사 쪽이구나 하는 걸 느꼈던 게 3층 세계사 쪽 전시가 더 흥미로웠다. 특히 중앙아시아 부분, 훈족, 투르크 등에서 몽골로 이어지는 중앙아시아의 계보를 정리해 놓은 전시물이 상당히 좋았다. 아무래도 세계사에 상당히 영향을 끼친 지역인데 지금껏 정리되어 본적이 없었으니까. 솔까 지금 거의 까먹긴 했는데(...) 하여튼 몽골은 정말 미친놈들이었구나 하는 걸 다시금 느꼈다.
그 외 인상적이었던 건 어린이들. 옛날 대영박물관에 관광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거기도 아이들 장난 아니게 많았는데.. 바닥에 공책 펼쳐놓고 뭔가를 끄적거리는 그대들. 나름 흥미롭게 보는 애들도 있었고 관심없어 보이는 애들도 있었고(물론 이들이 다수) 뭐 그런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 다음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 향했다. 처음엔 국립중앙도서관을 가려고 했는데 변경한 이유는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전우치와 깜도치'. 어렸을 적 할머니 댁에 놀러가면 꼭 책을 한권씩 사 주셨는데, 여러 책들이 기억에 남지만 이 책을 가장 재밌게 읽었었다. 어렸을 때 샀던 책들이 대부분 그랬듯 이 책도 어느새 없어졌는데, 국립도서관에는 지금껏 출판된 모든 책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정말로 있었다. 실물로 보려고 하면 좀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전자책 형태로 읽었다. 오오.. 모든 책을 데이터베이스해 놨다는 거지. 좀 멋있는데? 전우치와 깜도치는 유명한 설화 속 인물인 전우치의 소년 시절의 이야기로, 전우치와 작가 오리지널 캐릭터 깜도치가 의형제를 맺어 전국을 여행하며 악당들을 혼내주는 활극 만화다. 오랫만에 읽어보니 기억이 나는 부분도 있고 안 나는 부분도 있었는데, 전우치의 특징인 도술은 거의 안나오고 싸움 실력과 지혜로 난관을 돌파했다는 게 새롭게 느낀 부분이었다. 소년들이 좀 더 이입하기 좋으라고?
이후 호텔로 향했다. 이번에 묵은 호텔은 2년 동안 이용했던 도미인 호텔 말고 다른 호텔을 찾아보고자 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선택한 것은 호텔 소설. 메리트는 복층 3증 구성으로 여러 가지 시설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1층에는 빔프로젝트, 3층에는 자쿠지 욕조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불만족 스럽진 않았지만 굳이 또 갈 정도는 아니었다. 도미인이 3성 호텔이었고 소설은 1성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그냥 잘 꾸민 모텔 같은 느낌이었다. 고급스러움이 부족하달까.. 그러니까 이것저것 시설이 많은 거겠지만. 일단 빔 프로젝트 자체는 문제없이 돌아갔고 사운드도 나쁘지 않았지만 와 소리 나올 정도로 큰 건 아니어서 그냥 약간 큰 티비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노트북이 기본 제공되서 편했음. 폰을 TV랑 연결 안해도 됐으니까.. 자쿠지도 약간 큰 욕조라는 느낌? 뭐 바닥이 구불부불하고 거품이 나오는 게 재미있긴 했지만.. 좀 프라이빗한 느낌을 주는 거 말고는 도미인의 대욕탕 쪽이 좀 더 목욕하는 데 좋았다. 또 개인 사우나실이 있다는 게 신기했는데, 아늑한 사이즈에 달궈진 돌에 물을 끼얹는 만화에서나 보던 체험을 했던 건 좋았지만 사우나실은 1층, 샤워실은 2층, 목욕탕은 3층이라는 희안한 구조가 좀 불편.. 침대 상태는 무난하게 좋았는데, 조명이 책을 읽기에는 좀 어두웠다. 1층은 아예 밝은 조명이 없었고.. 내가 몰라서 조절 못한걸수도 있긴 한데. 조식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나왔는데 맛이 괜찮았다. 약간 호텔 식당이라기 보단 하숙집에서 음식 받는 분위기였긴 했는데..
내년은 도미인으로 복귀할 지 다른 호텔을 찾아볼 지 생각 좀 해 봐야겠다. 비싼덴 너무 비싸더라고..
이하 본 것들 :
1) 배트맨 : 이어 원 - 요새 또 배트맨에 흥미가 가서 코믹스들을 모으고 있다. 살짝 후회가 되는데 배트맨은 내가 지금껏 읽었던 슈퍼히어로 코믹스 중 출간된 서적 수가 가장 많기 때문.. 근데 또 의외인 것은 그 중 상당수가 절판이라는 거다. 전자책도 없고. 어지간히 안팔리나? 마블 코믹스들은 웬만하면 절판 안되는데 DC는 그린랜턴도 그렇고 상당히 절판된 책들이 많다. 정책의 차이일까..
어쨌든 배트맨 코믹스 중 인지도가 제일 큰 책들 중 하나인 이어원. 확실히 느와르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뭐 특출난 스토리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고든의 비밀이 좀 그렇긴 한데) 정제된 그림, 삭막한 연출 등 느와르 만화의 정석같은 작품인 것으로 보인다. 같은 작가의 '데어데블 : 본 어게인' 보다 좀 더 재미있었다.
2) 배트맨 : 다크나이트 - 사실 계획에 없었는데 모처럼 빔프로젝트가 있는 장소니 영상물을 좀 더 보자 싶어서 다시 봤다. 3번째 보는 건데, 볼때마다 서스펜스를 느낀다. 역사에 남을 히스 레저의 조커도 물론 훌륭한 캐릭터지만, 영화의 짜임새 자체가 정말 꽉 차 있다. 나중에 라이즈까지 정주행했는데, 라이즈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였지만 라이즈는 스케일을 너무 키워놨고 캐릭터가 많아 약간 과하다 싶은 느낌이 있다.
3) 서랍 속 테라리움 - 쿠이 료코의 단편집. 아이디어 위주의 쇼트스토리들은 내게 그렇게 잘 맞는 편이 아닌데 이 만화는 재밌었다. 서사가 어느정도 납득이 갔달까.. 이 작가는 뚱한 표정을 그리는 걸 참 좋아하는 듯.
4) 메리와 마녀의 꽃 - 호캉스 루틴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이 작품을 선택. 지브리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의 기대는 둘째 치고 사실 음악때문에 선정했는데, 요새는 잘 안듣지만 관심 있게 들었던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의 노래 중 제일 좋아하는 게 'rain'이고 그게 이 영화의 테마곡이기 때문이다.
뭐 특히 무언가가 빠지는 부분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닌 평범무쌍한 판타지 만화였다. 그림은 좋았지만 스토리적으로 뭔가 주장하는 게 약하고 흘러가는 데로 흘러가는 느낌? 지브리 색이 강한데 그 덕인지 감독 혹은 제작진만의 오리지널리티는 좀 부족한.. 무난이라는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뭐 못만든 영화가 아닌게 어디야.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브 내한 예매 (0) | 2024.08.09 |
---|---|
5회 일러스타 페스 (0) | 2024.05.08 |
23년 호캉스 (0) | 2023.08.25 |
블루 아카이브 1.5주년 페스티벌 후기. (2) | 2023.05.21 |
2022 호캉스. (1) | 2023.01.06 |